충남대학교 71년, 그 위대한 역사

대학 발전의 토대가 된 대덕캠퍼스 이전

전쟁의 포화와 유신독재라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충남대학교는 대학으로서 본격적인 확장에 나섰다. 이 시기 가장 큰 변화는 제8대 서명원 총장이 추진한 캠퍼스 이전 사업이었다. 비좁은 문화동캠퍼스에서 대덕캠퍼스로의 이전으로 충남대학교는 그 질적인 면이나 규모 면에서 전국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교육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그다지 필수적인 사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명원 총장의 혜안과 결단으로 대덕캠퍼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덕캠퍼스로의 이전은 충남대학교가 공간적 제약 없이 확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77년 서명원 총장이 제8대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대덕캠퍼스 이전 및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 총장은 서울대학교 부총장 재직 시 서울대학교의 관악 캠퍼스 이전 사업에 관여했던 경험을 살려 계룡산 기슭 대덕 연구단지 내에 있는 약 100만 평의 부지 위에 6만 7천여 평의 교육 시설을 건립하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캠퍼스를 이전하는 사업은 대학의 시대적 사명과 지방 국립대학의 육성이라는 국가 시책에 의해 계획・추진된 대 프로젝트였다. 1981년 3월 제9대 총장으로 연임된 서명원 총장이 대학 이전 사업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대학본부와 법경대학이 대덕캠퍼스로 이전했으며, 이듬해인 1982년에 농과대학이 마지막으로 이전을 완료했다. 또, 대학의 중추 시설인 중앙도서관이 대덕캠퍼스의 중앙에 완공됐다. 당시 초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도서관은 지하 1층에 지상 5층으로 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 건물로 당시 대학 구성원과 지역민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덕캠퍼스의 완성과 함께 때를 맞춰 학생정원이 대폭적으로 증가됐으며, 그에 따른 교수 정원도 대대적으로 증가하여 명실공히 명문대학으로 도약할 발판이 마련되었다. 대덕캠퍼스 이전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자연 경관과 건축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캠퍼스의 조경 사업과 교목・교화 선정 사업이 진행됐다. 1982년 5월 23일 학교의 상징물인 백마상의 준공은 물론, 곳곳에 연결된 가로의 이름 짓기 사업이 대학 신문사 주관으로 전개돼 대덕캠퍼스에 활기를 더했다.

민주화를 위한 대학 구성원 모두의 열망

1979년에는 10・26사태에 이어 12・12사태마저 일어나며 우리 사회를 뒤흔들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1980년 5월 1일에는 총학생회를 주축으로 한 충남대학교 사상 최대의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대운동장에 모인 5천여 명의 학생들은 ‘계엄령 해제’, ‘언론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전역으로의 행진을 시작하였다. 학생 시위대는 출동한 경찰대의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섰다. 잠시 후퇴한 시위대는 4진으로 나누어 각각 대전역에 집결하였다. 그들은 대전역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후 보운캠퍼스까지 약 2㎞의 가두 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시위는 7일까지 철야농성과 연좌시위로 이어졌다. 학생회에서는 5월 1일과 5월 6일의 2차에 걸쳐 시국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교수협의회에서도 5월 6일 ‘정의에 입각한 민주화작업이 조속히 성취되기를 희망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한편 1980년대 초 유신 체제의 종말과 광주민주화운동, 제5공화국의 수립과 폭거 등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반전이 심했다. 이에 따라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는 더욱 격해졌고, 군사 정권의 몰상식적 정국 주도 역시 강하게 표출되었다. 계엄과 긴급조치 등으로 정권을 연장하던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민주화의 봄을 열망하던 시민과 학생들은 또 다시 군사 정권의 출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주정부의 탄생은 다음 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충남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학생들은 온몸으로 군사 정권의 탄생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 시기 학도호국단이 폐지되었고, 총학생회가 부활되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발족하면서 학생들의 소리를 대변했고, 학생 운동의 방향도 새롭게 정비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군사 정권은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학생회관을 준공하면서도 군사안보의 정착이라는 미명하에 학생 병영 훈련을 강화하는 등의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동 작전을 전개하였다.

1980년대 후반도 학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민주화 운동이 크게 발전되어 결국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따라서 이 기간은 학내적으로도 대학 자율화와 학원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충남대학교도 1987년 체육교육학과 사건・1988년의 미술학과의 총장실 점거 사건・사회과학대학 문제 등 대학 자율화를 위한 많은 진통을 겪었다.

이밖에도 1968년부터 1989년까지 전개된 충남대의 확장기에는 오랜 심의와 연구 끝에 제정된 창의・개발・봉사의 교시부터 새로운 대덕캠퍼스에 설립된 체육관・기숙사・실험실습실・공장동 등과 같은 부속 시설, 보운 캠퍼스에 신축된 의과대학 부속병원까지 충남대의 본격적인 도약을 위한 다양한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대덕캠퍼스 이전을 통해 국내 최초로 연구기관과 대학이 한 도시 안에 위치해 연학 협동을 가능케 함으로써 충남대가 중부권 대표 국가거점대학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