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교수에게 '연구'란 궁금해서 알고 싶고, 그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찾아냈을 때 다음 질문이 꼬리를 무는 몰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과정이었다.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발표함은 물론, 활발한 소통을 통해 서로 다른 전공 연구자들과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퀀텀 점프하는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연구인생은 보람의 순간이 됐다. 지난 2월, 사랑하는 모교인 충남대에서 연구자이자 교수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석학교수'의 자리에 오른 충남대 의학과 조은경 교수, 오롯이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몸 바쳐 오시는 충남대의 모든 교수님과 함께 보람과 영예를 나누고 싶다는 2023년 CNU 석학교수 조은경 교수를 만났다.
사랑하는 모교에서 주시는 귀한 영예라 지금까지 받았던 어떤 상이나 표창보다 저에게는 더욱 의미있고 소중합니다. 정말 기쁘고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 지금도 연구 현장에서 애쓰시는 많은 교수님을 생각할 때 어깨가 무겁고 송구한 마음도 듭니다. 모든 연구는 다 고유의 가치를 지닌 중요한 학문 분야들이라 이 연구와 저 연구를 비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롯이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몸 바쳐 오시는 우리 대학 모든 교수님과 함께 보람과 영예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름드리 자라난 나무의 열매를 보고 있다면 누군가 땅을 일구고 심고 가꾼 결과이겠지요. 의과대학이 개교를 한 지 56년째가 됩니다. 초창기 충남의대 미생물학교실에 부임하셨던 故 최대경 교수님, 지금은 은퇴하신 백태현 교수님, 박정규 교수님들께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결핵 연구를 시작하셨고 불모의 사막 같은 곳에서 꽃을 피워내신 분들이십니다. 현재까지 저희 교실은 50여 년 이 분야의 연구를 지속하며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습니다. 저는 첫번째 이유로 한 분야에 집중해 온 교실원 집단 연구의 특별한 역사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20여 년 전 영국 연수를 갔을 때 인상 깊었던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 연구소는 지금도 많은 노벨상 수상자 배출로 유명합니다. 기초 분야의 장기간 투자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문화가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가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계속 이어져 학문 후속 세대에서 노벨상 수상자들까지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협력 연구 덕분입니다. 저는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 각각 9년, 7년간 장기적으로 과기정통부 선도연구센터사업에 교수님들과 함께 도전하여 충남대 기초의과학 연구센터를 이끌어 왔습니다. 다양한 전공을 연구하시는 교수님들과 집단 연구를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다른 분야에서 저의 연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최근의 화두가 되는 ‘융합’ 일 것입니다. 저의 지식과 접근 방법만으로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집단 연구의 큰 장점이며 함께 최선을 다해 주신 센터의 모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는 훌륭한 학생들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연구의 동기는 물론 끊임없는 궁금함과 호기심, 열정이겠지만 또 다른 큰 이유는 학생들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20대와 30대에 연구하러 온 학생들이 힘들지만 성실함으로 지속하는 중에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때 너무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모든 학생은 다 저마다의 위대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대함이 발견되고 스스로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도전할 때 학생과 스승의 아름다운 합작품으로 논문 한 편이 작품처럼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무수한 땀과 노력의 결정체들이 쌓여 책의 한 줄이 나오고 의생명과학 분야의 지식들이 쌓이는 것을 생각하면 젊음을 바치는 위대한 학생들이 함께 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9년 쎌 호스트 마이크로브(Cell Host & Microbe)지에 발표한 비타민 디와 결핵 연구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결핵은 단일세균으로 인한 감염병으로는 현재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망을 유발하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1940년대 항결핵제가 개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햇볕을 쬐면 결핵이 좋아진다고 생각해서 햇볕치료나 비타민 디 투여는 결핵의 고전치료가 되었습니다. 저의 실험실은 결핵의 숙주 면역 반응을 연구하는 실험실로 세포 내 잔존하고 동면하는 결핵균을 어떻게 사멸시킬까를 연구하던 중, 비타민 디를 투여했을 때 리소좀 활성으로 이끄는 자가포식(autophagy)이 유발될까 라는 단순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식세포에 활성형 비타민디를 처리하고 형광으로 표지한 자가포식낭이 반짝반짝 빛나는 결과를 얻었을 때의 기쁨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본 논문은 비타민 디 경로를 통해 항균 활성을 나타내는 카텔리시딘이 숙주세포에서 결핵균에 대한 자가포식을 매개한다는 새로운 기전을 밝혀 Faculty of 1000 Biology에 추천되고 현재까지도 880회 이상 인용되는 논문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논문을 시작으로 자가포식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세포 내 결핵균을 사멸시키려는 후속 연구들이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도 숙주 세포 고유의 생명 현상 중 항결핵 작용에 기여하는 중요한 조절자들을 찾고 이들을 활용해서 항균 효과를 높이고자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집단 연구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전공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소통은 항상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로서 뇌과학 연구를 하시는 교수님과 ‘스트레스가 감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억제성 신경조절물질이며 대사물질인 가바(GABA)에 의한 면역 조절과 결핵 제어 효과를 보고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에 대한 후속 연구들도 현재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이오 연구 분야에 새로운 기술과 기법들이 도입되면서 생물정보학, 컴퓨터 공학과의 밀착형 융합연구가 의학과 생명과학 연구과정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의학 연구 내에서도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간의 밀접한 공동연구를 통해 세포 수준에서 발견한 연구 결과가 실제로 임상적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는 기본적으로 팀워크이며 앞으로는 언어가 같지만 서로 다른 플레이를 하는 여러 팀 간의 협력(예, 의학 내 여러 전공)을 넘어서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만 통역하면서 함께 플레이해 나가야 하는 융합 연구들(예, 의학과 공학, 의학과 농학, 인문학 등)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본인의 연구 분야에 탁월한 장인으로 성장하면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소통하다 보면 새로운 질문과 더 어려운 과제에 함께 협력하고 도전할 기회가 열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은 나혼자 이루어 낼 수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커다란 돌파(breakthrough)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질문하기’를 강조합니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내가 하는 연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자세로,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성실한 연구자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연구중심대학은 창의적이고 전문적 지식과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이 강화되고 훌륭한 인재들이 대학원이라는 연구의 최전선에서 마음껏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의 마련과 우수한 대학원생 유치를 위한 지원 대책이 꼭 필요할 것 입니다. 최근 글로컬 대학 사업 지원을 위해 대학 내 제도적 혁신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고 특히 전공과 학과 간 경계를 뛰어넘는 실질적인 융합 연구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들도 가능해질 것 으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대학 학부 학생들이 전공을 교차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융합형 우수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특단의 지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전공 발굴과 탐색을 위한 충분한 장학 제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발굴하고 격려하는 연구비 지원 제도 등이 지금보다 많이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생 연구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대학원 연구소를 통한 교수요원으로, 국제적으로 뻗어나갈 학생들은 미리 해외 대학에서 연구 경험을 쌓고, 혹은 산학협력의 고도화를 통해 산업체 필수 인력으로 양성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학생들이 졸업을 늦추고 취업 스펙을 쌓는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여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연구에 몰입할 때 각자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장이 열릴 수 있도록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감염병 연구 분야의 오래된 난제 중 하나는 왜 같은 병원체에 감염되더라도 무증상부터 중증 감염까지 서로 다른 임상 양상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결핵을 연구해 오면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연구 인생이 다할 때까지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것입니다. 결핵균에 감염되더라도 90% 이상의 사람들이 무증상 감염자가 되어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잠복 결핵으로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 들 중 평생 10% 정도가 결핵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잠복 결핵의 뚜렷한 치료 마커를 찾지 못해 항결핵제인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피신을 3개월 혹은 그 이상씩 투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활발하게 증식하는 세균 제어에 유리한 항생제를 증식하지 않는 잠복 균 제거를 위해 투여하며 아주 어린 소아들의 경우에도 항 결핵제 외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잠복결핵의 원인을 이해하여 재활성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제어 방법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활동성 폐결핵으로 진단되면 6개월 혹은 9개월간 초치료요법으로 3~4종류의 약제를 매일 투약해야 하는데 치료를 마음대로 중단하는 경우 치료 실패가 되고 약제 내성이 유발됩니다. 이 경우 심지어 2년까지 부작용이 심한 항결핵제 치료를 해야 합니다. 여전히 결핵을 비롯한 감염 연구 분야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지만, 특히 항생제 내성 문제는 앞으로 인류가 경험하게 될 가장 중요한 보건 문제 중 하나이므로 이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개척해 온 결핵에서의 자가포식 기초 연구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발전시켜 미래에는 결핵 치료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다제내성 결핵에도 치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적용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연구의 길을 선택했다면 잘한 것입니다. 궁금해서 알고 싶고, 그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찾아냈을 때 다음 질문이 꼬리를 무는 몰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연구이든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호기심을 가지는 연구 주제를 붙잡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실험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일이라면 실험 습득 과정에서 시도와 실수, 실패들을 넉넉히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더욱 크고 중요한 일일수록 많은 사람의 협력과 전문성이 녹아져야 합니다. 따라서 주변 연구자들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언제나 가능하도록 항상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그 무엇을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학문 과정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는 연구자가 되십시오. 저 역시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어도 연구를 사랑하는 연구자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