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의 랜드마크Ⅱ

지난 70년의 충남대의 역사 속에서 대학 구성원과 함께 충남대를 대표한 충남대만의 랜드마크들을 아시나요?
우리는 지난 봄호를 통해 ‘충남대 정문’과 ‘백마상’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숨겨져 있던,
잊혔던 우리 랜드마크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CNU돋보기에서는 지난 호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충남대 랜드마크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영탑지와 충대석탑’, ‘교시탑과 조각공원’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직접 찾았던 충남대의 명소로서 싱그러운 봄날엔 우리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무더운 여름엔 시원한 쉼터가 되어준 랜드마크들인데요.
과연 두 랜드마크에는 어떤 역사와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을까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에 앞서 ‘영탑지와 충대석탑’, ‘교시탑과 조각공원’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OX퀴즈를 먼저 풀어볼까요?

충남대 랜드마크 깨알 OX퀴즈

❶ 충대석탑은 신라의 석가탑을 재현한 것이다.O / X

❷ 중앙도서관 뒤편에 있는 교시탑은 시계탑이다.O / X

❸ 막동의 원래 이름은 조각공원이다. O / X

❹ 영탑지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다. O / X

충남대 정문부터 중앙도서관을 관통하는 대로인 ‘한빛의 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꽃과 나무로 숨겨진 정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로 충남대의 후원, 영탑지와 충대석탑입니다. 영탑지는 학업과 일, 취업 등 삶의 여정에 지친 대학 구성원들에게 심심한 위로이자, 휴게의 장소가 되어주는 멋스러운 쉼터죠.

그렇다면 왜 영탑지와 충대석탑이 우리 대학의 랜드마크가 되었을까요? 충남대가 문화동에서 대덕캠퍼스로 이전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 충남대 부속시설인 충남대박물관은 충남 부여에 위치한 백제 사찰터 ‘정림사지’의 발굴조사를 맡았습니다. 이 발굴조사에서 충남대박물관은 백제시대의 가람배치와 건물기단·기초, 석탑 조영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사적과 유물을 발굴함은 물론, 정림사지가 사적(제301호)으로 지정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죠.

이에 대학과 본교 이전 건설을 맡은 동산토건은 30주년을 맞는 충남대의 발전을 위한 사업으로 분수 시설인 ‘영탑지’를 만들고, 우리 조상들의 문화 창조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정림사지 5층 석탑(국보 9호)을 ‘충대석탑’으로 재현 건립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40년간 영탑지와 충대석탑은 충남대 구성원들의 사랑을 받아오며, 충남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자리잡았습니다.

이렇게 뜻깊은 역사를 보유한 영탑지와 충대석탑에는 이에 걸맞은 전통이 있었는데요. 성년의 날을 맞이한 충대생이 영탑지 한복판에 입수하는 전통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과거 성년의 날에는 학생자치기구가 주도해 입수 행사를 진행할 정도로 영탑지 입수 전통은 충대생들의 고유한 전통이었죠.

연못에 빠짐으로써 ‘미성년 시절의 자신을 씻고 진정한 성년이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반면, 연못이 고인 물이라는 부분에서 ‘찌들고 고인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도 있을 정도로 많은 성년이 영탑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전사고, 과거의 산물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성년의 날 영탑지를 찾는 충대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드는 추세죠.

현재 우리 영탑지의 물속은 성년을 맞이한 대학생들이 아닌 잉어, 붉은귀거북, 연꽃 등 다양한 수생생물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제 영탑지 입수 전통은 거북이들에게 양보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시원한 분수와 그늘 쉼터를 내어주는 충남대 랜드마크, 영탑지와 충대석탑에서 폭염으로 지친 하루를 위로하시는 건 어떨까요?

중앙도서관 뒤편에 있는 교시탑은 충남대를 상징하는 기념탑으로서 1995년 개교 43주년과 국책대학 선정을 기념하기 위한 의미로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현재 교시탑은 3면 탑신 20.2m의 높이로 설치되어 있는데, 우뚝 솟은 3개의 기둥은 충남대학교의 교시인 ‘창의’, ‘개발’, ‘봉사’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교시탑 설립과 함께 공원이 조성된 덕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대학 구성원들이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죠.

새로배움터나 연합엠티의 OX퀴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교시탑’과 관련한 문제인데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충남대 교시탑은 시계탑이다’라는 유명한 문제의 답은 ‘X’입니다. 하지만 1995년 이전에는 문제의 답이 ‘O’였다는 것을 아시나요? 충남대 교시탑은 정말 시계탑이 맞았습니다. 본래 교시탑은 1984년 대덕캠퍼스로의 이전사업을 마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시계탑이었죠. 최초 시계탑은 학생들의 성금과 대학의 지원으로 지금의 자리에 건립됐는데요. 건립 이후 시계탑은 표준연구소(現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시보를 무선으로 받아 정각마다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대학 구성원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교시탑과 더불어 충남대 구성원들이 즐겨 찾는 랜드마크가 하나 더 있는데요. 혹시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진 ‘조각공원’을 아시나요? 조각공원은 충대생이라면 한 번쯤 거쳐 갔을 그곳, 충대에 입학하지 않은 새내기들도 다안다는 유명한 잔디밭, 흔히 ‘막동’으로 알려진 ‘막걸리 동산’입니다. 정식 명칭은 조각공원이지만, 조각공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에게는 막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충남대 최초의 막동은 서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잔디밭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웠던 학생들이 값싼 막걸리와 두부를 사다가 둘러앉아 마시기 시작한 것이 막동의 유래가 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막동도 위치가 바뀌게 됐습니다. 여러 곳을 거쳐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조각공원이 막동으로 자리 잡고, 그 명칭을 이어받아 많은 학생이 즐겨 찾는 충남대의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게 됐죠.

올해 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대면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조각공원에는 다시금 막동이 부활했는데요. 막동이 끊긴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새내기와 헌내기들은 조각공원에서 한데 어울려 꿈꿔왔던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충남대가 70년을 넘어 100년의 대학으로 나아가기까지 앞으로도 조각공원은 막동으로서 많은 대학 구성원에게 사랑받고 낭만 넘치는 랜드마크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