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온 예술인들이 코로나19로 지친 지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코로나로 멈춰있던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는 AI시대 로봇에 대한 인류의 윤리 문제를 이슈화하고, 전쟁, 재난, 평화, 사랑 등의 주제를 담은 오페라 ‘레테’(The Lethe)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처음 들어도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탱고와 왈츠 같은 서양음악부터 동요까지 다양한 멜로디가 활용된 이 날 공연의 작곡은 충남대 음악과를 졸업한 김주원 작곡가가 맡았다. 김주원 동문은 도이치 그라모폰 최초로 수록된 한국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작곡했으며, 동아음악콩쿠르 1위, 중앙음악콩쿠르 2위, 세일한국가곡콩쿨 1위 등의 입상은 물론, 오페라 <너에게 간다>, <사막 속의 흰개미>, <허왕후> 등을 작곡해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작곡가이다.
음악이 좋아 작곡을 전공한 학생에서 스스로를 작곡가라고 소개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배움과 고뇌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해온 김주원 동문. 청출어람 할 수 있는 후배와 제자를 양성함으로써 지역청년예술가들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는 그의 과거와 앞으로의 비전을 듣고자 ‘CNUStyle’이 찾았다.
어릴 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고3 때 대입을 준비하면서 ‘피아노를 계속해도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없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못 내리던 중에 저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을 자주 들었는데요. 그때 작곡에 대해 관심 갖게 됐습니다. 저를 달래준 이 음악들처럼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덕분에 충남대 음악과에 진학했고, 작곡 전공자로서 작곡을 배우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학부 시절, 지금은 퇴임하신 박순희 교수님의 제자였는데요. 대학 시절은 기초를 다져나가는 시기였기에 당시 대학생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모든 전공이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적인 재능과 기초는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요. 어릴 적 부터 예술학교와 같은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기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의 간극을 좁히려고 기초를 쌓는 데 엄청나게 투자했습니다. 학부 시절에 포기하지 않고, 작곡에 대한 기초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 끈기와 노력도 있었지만, 박순희 교수님이라는 좋은 스승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작곡을 전공했지만, 작곡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제가 작곡을 전공할 뿐이지, 작곡가로서 성과가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저 자신을 소개할 때 작곡가라고 말씀드리기는 민망하더라고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저 스스로를 작곡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국내 음악계의 등용문인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순간을 시작으로 제 음악적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죠. 아, 이제는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아도 되겠다고요.
가장 행복했다고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몇 가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동아음악콩쿠르’를 시작으로 123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명문 레이블인 ‘도이치그라모폰’에 제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가 한국 가곡 중 최초로 수록됐던 순간, 바리톤 최현수, 테너 김우경, 김재형, 소프라노 박혜상, 임선혜, 피아노 조성진, 백혜선 등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들에게 제 곡이 연주된 순간, 오페라 작곡가로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최대 사업인 올해의 신작 창작오페라부분에 최우수 선정되고, 김해문화재단 그랜드 오페라 ‘허왕후’에도 최종 선정됐던 순간 등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많습니다.
최근 오페라 작곡을 한 뒤에 제가 편히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피아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곡가마다 살아온 배경이나 환경이 달라서, 작곡하면서 필요한 부분도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환경이 제일 중요합니다. 최근 충남대, 목원대, 한밭대 그리고 예술의 전당 기획으로 제작된 창작오페라 레테의 작곡을 맡게 되었는데요. 오페라의 경우 작곡을 하는 데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집에 개인 피아노가 없다 보니 굉장히 힘들게 작곡했습니다. 그때 한 번 더 느꼈죠. 작곡하는데 환경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음 작업 때는 저만의 공간에서 또다시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곡에 대해 이야기하면 음악은 작곡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저는 상상력보다는 기악곡과 가곡을 나눠서 소재나 영감을 다르게 얻고, 음악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먼저, 기악곡의 경우에는 제목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노래의 제목이 대중들이 느끼는 첫인상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첫 인상도 중요하듯이 노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제목에 맞춰 음소재와 음정구조를 계획한 뒤 작곡하는 편입니다.
반면에 가곡의 경우에는 시를 통해서 영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 시의 분위기와 내용을 이미지화한 뒤 작곡을 하는데, 예를 들면 시에서 높은 하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음정을 높게 쓴다는지, 어두우면 전체적인 음악의 분위기를 낮추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이렇게 뛰어난 상상력이 아닌 구체적인 이미지나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해서 관객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악이 대중적이냐 예술적이냐는 작곡가의 음악 성향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둘의 논의와 상관없이 대중이 찾는 음악이 예술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룬다면 정말 이상적이지만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주로 대중들이 찾는 음악을 만드는 만큼 제 음악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평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저만의 색깔과 취향을 가진 음악으로 대중을 만족시키고 싶습니다. 누군가 잊지 않고, 계속 들어주고, 부를 수 있는 음악을 통해 예술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요. 제 자식 같은 노래들이 여러분께 환영받고, 어디서나 연주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월간 김주원’을 듣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곡을 내고 있습니다. ‘월간 김주원’은 2018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매달 곡을 내는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이유는 부지런한 작곡가의 삶을 살기 위한 저와의 약속이자,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월간 김주원’의 작곡 장르는 주로 가곡인데, 가곡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울리기 정말 좋은 장르입니다. 또,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을 위한 마음을 담아 ‘월간 김주원’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방적으로 곡을 내는 작곡가가 아닌 음악적 소통을 이어나가는 작곡가가 되고자 합니다. 많은 분이 제 음악을 찾으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곡이란 잘 만들어진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잘 만든 요리가 있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작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요. 수많은 달인 중에 특히 요리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요리하는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작곡의 모든 과정이 떠올랐어요. 작곡을 위한 소재 선정부터 다듬고, 음악을 완성해가는 과정까지. 작곡가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모습이 정말 닮아있습니다.
또, 요리라는 게 완성된 것을 먹어봐야 그 맛과 평가를 알 수 있는데 모든 창작물이 그렇거든요. 제 음악이 완성되고 나서야 이게 잘 만들어진 작품인지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죠. 잘 만들어진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요. 절대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대중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멋진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참 많은데요. 우선 청출어람하는 제자들의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작곡가로서 걸어온 길을 디딤돌 삼고,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미뤄왔던 목표를 하나씩 이루려고 합니다. 사실 작곡가에게 유학은 필수적인 코스와도 같은데 제가 아직 유학을 못 다녀왔거든요.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만큼 해외에 나가 공부도 하고, 견문도 넓히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모교인 우리 학교에서 후배들을 양성함으로써 우리 음악과의 위상을 어떤 학교 못지않게 드높이고 싶습니다. 충남대가 지역 예술가들의 산실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를 배출하는 학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예정입니다. 물론, 저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운 일이겠지만, 저를 비롯한 음악과 동문 모든 분이 함께해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선배님들이 일궈오신 음악과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작곡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고, 공부하는 입장이지만, 열심히 하는 것만큼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지금 막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후배 작곡가들은 처음 써보는 편성이 많을 겁니다. 처음인 만큼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계속 공부를 하고 쓰셔야 해요.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꾸준함입니다. 저도 지금 쌓아온 프로필이 있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에 이룬 게 아니거든요. 계속 공부하고, 떨어지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한순간의 고비에 흔들리지 않고, 왜 내 음악이 부족한지 분석하고, 반성하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만든 음악의 결과가 좋고,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맹신하지 마세요. 결과와 재능은 여러분의 노력이 만들어준다는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음악 하시는 후배 작곡가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