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더불어우리는 그동안 겪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경험했다. 혁신적인 미래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었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쟁과 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존재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수많은 부작용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의 단절, 빈부격차의 심화, 급격한 기후변화 등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위드 코로나’라는 말처럼 코로나19와 더불어 우리가 모두 함께 나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이처럼 우리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철학과 김세정 교수에게 돌봄과 공생의 길을 묻는다.

Q. 혼란스러웠던 코로나19를 지나 어느덧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어느덧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2년째에 접어들었더군요. 사실 코로나19 유행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곧 해결될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죠. 코로나19로 인한 제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직접적 관계의 단절이었어요. 연구자로서는 물론이고, 교수로서 학생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어졌어요. 철학 강의인 만큼 아무래도 대면 강의가 더욱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 나눌 수 있는데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죠. 그나마 비대면 강의를 위한 다양한 매체와 도구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고, 학생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소통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존을 위한 성찰의 한가지로 철학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제가 현재 돌봄과 공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양명학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만큼 위드 코로나가 시작됨에 따라 이전보다 더욱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위드 코로나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코로나19 이전의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지난 10월에 교수님께서 소장을 맡고 계신 유학연구소의 학술지 유학연구가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지원사업’에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해 한 해 마음 졸이면서 지원한 학술지 지원사업에 어느덧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연속 선정이 됐네요. 먼저 투고자와 심사자는 물론 편집위원을 비롯한 실무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논문 투고하시는 연구자들이 논문 한 편 쓰시려면 보통 1년 이상 걸리시거든요.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저희 학술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투고자분들께서 좋은 연구논문을 주셨기 때문에 좋은 학술지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심사자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는데요. 투고논문을 심사하시는 분들은 심사료가 얼마 되지 않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가면서 성심성의껏 심사를 해주시거든요. 사실 심사를 가장한 봉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은데요. 제대로 된 심사를 위해 며칠씩 논문을 검토하시고, 꼼꼼하게 심사서를 써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느끼곤 합니다. 이처럼 많은 분의 노고가 있었기에 저희 유학연구가 학술지 지원사업에 13년 연속 선정되고, 더 좋은 학술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자로서 이런 분들과 함께 학술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참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Q. 13년 연속 ‘학술지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학술지 지원사업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시행하는 등재학술지 계속평가 (3년마다 평가)에서의 평가 점수입니다. 평가에서 85점 이상을 받아야 등재학술지로 계속 유지되는 데요. 유학연구는 평가 때마다 93점 이상을 받아왔습니다. 마침 최근에 2021년도 등재학술지 계속 평가에서 유학연구는 95.43점이라고 하는 매우 높은 평가 점수를 받았는데요,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학연구의 ‘전국적 투고’와 함께 ‘공정성’, ‘엄정성’, ‘우수성’에 있다고 봅니다.

학술지 유학연구에는 특정 대학이나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논문들이 투고됩니다. 그리고 엄정한 심사 규정과 연구윤리 규정에 따라 편집위원회를 중심으로 심사자 추천 및 심사 과정이 매우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되고요. 또한 ‘수정 후 게재’ 평가를 받은 논문에 대해서도 심사서에 따라 수정 보완은 물론, 심사답변서를 반드시 작성토록 한 이후에 재심사 과정을 통해 최종 게재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게재논문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편집한 학술지를 자체적으로 2~3차례 교정할 뿐만 아니라 한 차례의 필자 교정을 통해 한 번 더 게재논문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많은 분이 “좋은 논문이 있으면 꼭 유학연구에 투고하고 싶더라”라는 이야기들을 하시는데요, 아마도 우수한 학술지를 만들기 위한 이러한 노력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철학은 무엇이고, 우리가 철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도 있어요. 다만 일반적인 의미의 철학에 대해 말씀드리면요. 철학이란 단어 ‘philosophy’는 ‘~를 사랑하는’을 뜻하는 ‘philo’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의 합성어로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구체적 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 하는 방식·이유·의미 등 인간 상황에 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철학은 구체적 으로 우주 혹은 실재의 본성에 집중하는 ‘형이상학’, 추론의 규칙을 탐구하는 ‘논리학’, 지식의 본성 및 지식을 얻는 과정을 따져 묻는 ‘인식론’,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가치 및 규범을 모색하는 ‘윤리학’, 아름다움의 본질 혹은 예술의 기준 등을 정립하고자 하는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사실 우리는 누구나 매 순간 철학을 하고 있어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자신은 어디서 왔는지? 반문하고, 자신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착한 마음을 따를까? 욕망을 따를까? 고민하고, 하루하루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술을 감상하는 등의 일이 바로 ‘철학함’입니다. 다만 자신이 철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뿐이지요. 그런데 철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대학에 올 때까지 ‘철학’을, ‘철학하는 방법’을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철학을 가르치지 않잖아요. 설령 ‘도덕’이나 ‘윤리와 사상’에서 철학과 유사한 내용을 배운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은 시험을 보기 위해 무조건 외우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서로의 생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철학함을 어렵게 느끼거나 두려워하게 되는 거예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철학은 단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철학은 살아 숨 쉬는 ‘생물’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철학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요.

Q. 교수님께서는 동양철학을 전공하셨는데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형이상학, 논리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사실상 서양철학에서의 철학에 대한 정의이자 구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대에 서양문명과 충돌하고 서양학문이 유입되기 이전까지는 ‘동양철학’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지는 않았어요. 근대에 철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새롭게 설정하면서 서양철학과 대비시켜 유교, 불교, 도가를 동양철학이라 부르게 되었던 거죠.

그렇다면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어떻게 다르냐? 유교와 불교와 도가 또한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 유교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요. 유교는 철학만이 아니라 문학과 역사와 예술, 나아가 사회학과 정치학과 경제학 등을 모두 포함하는 종합 학문입니다. 자신을 수양하는 수기(修己)의 학문이자 세상을 경영하는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이지요. 그래서 유교에서는 인간을 독립된 실체 또는 욕망의 주체로 보기보다는 관계적 존재로 보는데요. 인간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친구 관계, 어른과 아이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이웃 간의 관계, 국가 간의 관계 속에 있어요. 그리고 그 관계를 잘 유지시켜 나가는 핵심이 바로 ‘인(仁)’이고요. 인은 오늘날의 말로 존중과 배려와 돌봄과 보살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동양철학에서는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신 것처럼 ‘닦음’을 중시한다는 점이 서양철학과는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불교의 수행(修行), 도교의 수도(修道), 유교의 수기(修己)와 수양(修養)은 모두가 ‘닦음(修)’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요. 몸과 마음을 닦아 욕망에서 해방되어 자비(慈悲)의 마음과 어진 마음(仁心)의 실천을 통해 너와 나의 틈새를 소멸시키고 하나 되는 것(一體) 그것이 바로 닦음의 본질이자 동양철학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Q. 코로나19로 이후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코로나19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야생 동물 서식지의 파괴와 야생 동물의 이동 등이 지목되고 있는데요, 그 이면에는 자연을 공존과 공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즉 도구적 자연관이 자리 잡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을 일삼고, 공해를 일으키고,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침범해왔지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동안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코로나19 등이 계속해서 발생한 것처럼 새로운 전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확산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보다 더욱 치명적인 질병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방역, 백신 접종, 치료제 개발 등과 같은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한 현재의 노력도 지속되어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근원적인 본질적인 문제, 즉 소비 문명, 신자유주의, 인간의 오만과 자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 추구 등과 같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탐욕과 경쟁과 갈등의 소비 문명에서 인간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자연이 건강하게 공생하는, 돌봄과 공생의 생태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앞서 인간 소외에 대한 문제를 말씀드렸는데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대두된 인간관계의 단절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이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더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초창기 마스크 대란 때 마스크 살 돈이 없어서 마스크를 못 썼던 사람들, 업무 특성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일한 근로자들, 무더위 쉼터가 폐쇄되어 폭염 속에 노출된 노인 분들까지. 결국 급격한 변화에 따라 경제적으로 빈곤하신 분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부분 경쟁의 관점에서 보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은 잘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저 지금 나만 잘 살 방법만 찾았거든요. 하지만 코로나19를 경험하고 나서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어요. 지금 당장은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없다면 나도 잘 살 수 없다는 것을요. 우리 사회는 서로 배려하고 보살피고 돌보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울러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의료 종사자분들을 비롯한 많은 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을 접하면서, 우리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돌봄과 배려, 공생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직접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질문의 답은 한 가지입니다. 경쟁과 갈등, 차별을 넘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돌봄과 공생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Q. 교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철학적 명문은 무엇인가요?

“본심이란 감통(感通)에서 살고 간격(間隔)에서 죽는다. 만일 백성들의 병으로 인한 아픔이 곧 나의 병으로 인한 아픔으로, 백성들의 어렵고 고생스러움이 곧 나의 어렵고 고생스러움으로 느껴서 서로 통함이 내 몸에 있을 것 같으면 스스로 빠르게 뛰어다니며 돕고 구제함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니, 그 몸이 거꾸러졌을지라도 본심은 살았다.”

위 명문은 양명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님의 저서 양명학연론에 실린 글인데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참혹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 민족의 동포들에게 느꼈던 정인보 선생님의 애틋한 마음과 이들을 위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요. ‘본심이란 감통(感通)에서 살고 간격(間隔)에서 죽는다.’라는 문장에서 ‘감통’은 ‘느껴서 통한다’는 뜻으로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이 나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고난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는 겁니다. 감통은 ‘생명 살림’을 의미하죠. 반면 ‘간격’은 ‘죽임’을 의미하고요. 서로의 떨어짐으로 인해 나는 너와 무관하다는,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든 말든, 그것은 단지 그들의 문제일 뿐 나와 무관하다는, 오히려 나의 안위와 부귀를 위해 백성들을 고통과 죽음의 나락으로 몰아갔던 당시의 위정자들과 친일파들을 비판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메시지가 1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의 상황이 과연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인보 선생님의 말씀처럼 죽임의 간격이 아닌 살림의 감통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Q. 교수님께서 앞으로 목표하신 계획과 비전이 궁금합니다.

현재 학문적으로 목표하는 부분은 돌봄과 공생의 유학적 논의를 통해 현실의 문제, 나아가 미래의 비전을 재구성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유학은 과거의 유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돌봄과 공생이라는 부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점들이 매우 많거든요. 이런 유학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먼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문제, 둘째는 우리 사회의 경쟁과 갈등과 차별의 문제를 유학적 접근을 통해 심도 있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30여 년간 다루어 오면서 왕양명의 생명철학 (청계, 2006,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돌봄과 공생의 유가생태철학 (소나무, 2017, 세종우수학술도서)과 양명학, 돌봄과 공생의 길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로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고 봐요. 물론 아직도 탐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지만요. 신자유주의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 무한 경쟁과 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탐구와 모색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요, 가까운 시일 내에 연구년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또, 동양 철학자로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실천입니다. 제가 연구하고 가르친 지식과 지혜들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시간, 즉 수양(修養)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Q.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충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현재 인류가 자본주의, 개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 등 다양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아쉬운건 바로 친구와 동료가 사라지고, 경쟁자만 남았다는 것이에요. 어떤 목표를 향한 사다리에서 수많은 사람과 경쟁하고, 때로는 밟고 올라서고, 끄집어 내리면서 사는 삶이 과연 옳은가를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처럼 승자만을 위한 사회를 지속하면 끊임없이 패자가 양산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승자도 결국에는 패자가 되어, 마침 내는 우리의 삶의 기반인 사회가 붕괴되거나 소멸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너무 급하게 살아오지 않았는지 지난날을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제 여유를 갖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의 관계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동료와 친구를 만들면서 우리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아울러 현재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일은 선진국이나 국가기관만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한사람, 한사람이 일상에서 생태적인 삶을 살았을 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더 이상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는 삶이 아닌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돌봄과 공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여러분이 그런 삶에 함께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필요성을 전달하고, 돌봄과 공생의 생태적 삶을 여러분과 함께 실천하는 그런 철학자가 되겠습니다.